홍라희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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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가계도

장곡토 2024. 5. 31. 14:30

홍라희 가계도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재산이 63억 달러(한화 약 8 3,300억원) 2024 1월 포브스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로 아들에 이어 2위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미술 월간지 아트프라이스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선정한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에 올랐다.

 

과거 법정 스님이 삼성서울病院에 입원했을 때 홍 전 관장이 病院비 약 6천 만원을 대납해준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은 베스트셀러 책들이 많아서 인세 수입만으로 십억 단위 이상 벌었지만, 인세를 전부 학생들 장학금 등으로 기부해서 당시에 한푼도 없었다.

 

홍 전 관장의 부친 홍진기(洪璡基)는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으며, 1986년 타계할 때까지 중앙일보 회장으로 재직하였고 1983년에는 TV브라운관 생산업체 주식회사 보광을 세우기도 했다. 어머니 김윤남씨의 영향을 받아 홍 전 관장은 독실한 원불교 신자다. 홍 전 관장은 2011년 이건희 회장과 함께 뉴욕주에 원 다르마 센터 건립을 위해 부지와 건축비 전액 120억 원을 기부했다.

 

홍 전 관장은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주주이다. 홍라희가 일정을 소화하며 착용한 의복과 핸드백 등 소품은 화제가 됐고 고가임에도 매장에서 곧바로 동이 나기도 했다. 홍 전 관장은 여자 KS라인으로 유명한 경기여고 - 서울대 (미대)출신이며,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대저택을 보유하고 있다.

 

홍라희 가계도

 

 

이건희 전 회장의 별세 직후 온라인상에서 상속세와 관련한 부정 의견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실제 뉴스 댓글에서는 상속세율과 관련한 논쟁이 이어졌다. “부모가 피땀 흘려 모아 놓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준다는데 왜 국가가 탈취하는가. 공산주의 같다”는 비판이 있었다.

 

지나친 상속세는 기업의 경제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보였다. 반면 “삼성은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받은 기업이다. 어쩔 수 없는 부의 재분배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섰다.

 

한국 상속세 법정 최고세율(50%)은 일본(55%)에 이어 세계 2위다. OECD 국가 가운데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국의 평균 상속세율은 15% 수준이다. 특히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최대주주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30%를 가산해 최고세율이 65%까지 치솟기 때문에 보수 야권과 재계는 ‘징벌적 세율’이라는 이유를 들어 상속세 폐지 및 인하를 요구해 왔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 이후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는 법정상속비율대로, 삼성생명은 이재용 회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이 3:2:1 비율로 물려받았다. 홍라희 전 관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받지 않았다. 각각의 주식 상속가액은 ▲ 홍라희 전 관장 5조4천억원 ▲ 이재용 회장 5조원 ▲ 이부진 사장 4조5천억원 ▲ 이서현 이사장 4조1천억원이었다. 이에 따른 지분 상속세는 ▲ 홍라희 전 관장 3조1천억원 ▲ 이재용 회장 2조9천억원 ▲ 이부진 사장 2조6천억원 ▲ 이서현 이사장 2조4천억원으로 총 11조원선이었다.

 

2023년 8월 기준으로, 최근 1년 동안 가장 많이 대출한 대기업 사주 일가는 삼성이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삼성전자 보유지분의 51%를 담보로 2조250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식을 담보로 1조1670억원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삼성SDS,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6611억원을 대출받았다. 이들은 모두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조를 두고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자의 비애는 진시황 못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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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1 가치와 노동

건강할 때는 건강의 가치를 모른다. 건강은 잃어봐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안다. 중병에서 회복된 자의 남은 인생은 이래서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머니가 인생 제1가치라면 건조해서 좀 슬프다.

 

건강을 잃어본 적이 없어 휴식은 사치라 여기며 정신없이 노동에 몰두하는 인생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워커홀릭이 이런 부류다. 이런 사람들의 신조는 ‘신성한 노동을 통한 자아 실현’이다.

 

흔히 워커홀릭은 연구개발 쪽에서 많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의외로 현장노동이나 심지어 노가다 쪽에서도 이런 스타일은 적지 않다. 현장이나 노가다 계통에서 이런 사람들의 신조는 좀 더 단순하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긍정’소리를 자주 하고 ‘성공’과 ‘희망’, ‘밝음’소리도 자주 한다. 요지는 ‘긍정’과 ‘사고’란 용어를 묶어서 ‘긍정적 사고’가 ‘희망찬 내일’을 가져오므로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하고 사는 이유는 즐겁다고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지않고는 버틸 수가 없어서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시간 참 잘 간다고 흡족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양이나 사색 독서 따위는 완전히 남의 나라 일이다. 정신없이 노동으로 시간을 채우다 관 속에 들어갈 시간에 가까워지는 것이 그리도 흡족한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가 희망찬 내일을 가져오고 성공을 불러 온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쥐뿔만한 성공도 없고, 내일의 희망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 그 타령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고통과 괴로움이라고 말하면 부정적 사고방식이어서 안좋다고 답한다. 주워들은 것이 긍정은 밝고 부정은 어둡다는 것 뿐이라 긍정적 사고가 부정적 사고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교의 출발이 모든 것은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생이 괴로움임은 일체의 포장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임도 물론 모른다. 그 결과 어리석게도 희망가로 인생을 애써 채워 부자연스럽게 포장한다. 밝음과 어둠이 실체적 구분이 아님을 이런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긴 대단히 어렵다.

 

시간 3분을 주고 좋아하는 용어와 싫어하는 용어를 5개씩 말해보라고 하면 이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답한다.

- 좋아하는 용어 : 긍정, 성공, 노력, 희망, 밝음 등

- 싫어하는 용어 : 부정, 실패, 나태, 절망, 어둠 등

 

이 사람들은 현재도 여전히 성공, 긍정, 노력 타령을 계속하고 있다. 뭔 노력을 일생 내내 해야 한다면 저주받은 인생이 아닐까란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한데, 박정희 시대 새마을운동 노래가사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밝기만 하다.

 

인간 개개인은 어차피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다 가는 존재라 자각은 상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떠한 문제점도 허망함도 절망감도 안느껴지고, 긍정적 사고만한 게 없다는데야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실수로 우물 속에 빠진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 불행하지만 우물 속에서 태어난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 불행을 느끼지 못한다.

 

사후심판이 행해 진다면

인간은 우주의 주연이 아니다. 인간이 없어도 우주가 돌아가는데에 아무런 차질이 없다. 기독교에 따르면, 신의 창조물 가운데 인간만 사후심판을 받는다. 동물은 본능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 뿐이다. 동물은 인간처럼 하기 싫은 것, 귀찮은 것을 해야할 일도 없다. 인간에게 엮여 가축이 된 동물은 비참하지만, 야생 동물의 삶은 그런데로 나쁘지 않다.

 

사후심판이 행해 진다면 유독 인간만이 죽기전 행위에 대해 심판받는다는 점에서, 인간만큼 불쌍한 동물도 없다. 우주의 엑스트라인 인간이 없어도 우주가 잘 굴러가는데, 굳이 인간을 창조해서 사후심판을 해야할 이유가 과연 뭘까?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창조물들 가운데 인간 창조는 다른 것들의 창조와 확연히 구분된다. 창조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사후심판을 받아서다. 여기엔 이유가 있어야만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 심판이 이루어져 무더기로 지옥간 사람들도 제각기 볼멘 소리를 할 만 하다. “심판을 할거면 사전에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알려주지도 않고 왜 일방적으로 심판을 하나? 사전에 심판이 행해질 것임을 알려주었다면 죄를 안지을 수도 있었는데..... ”

 

이들의 불평에도 일리는 있지 않을까? 심판이 불평등 문제와 맞물리면 납득하기 어려운 공정성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불평등을 감안하지 않은 ‘사후심판’은 공정하지 않아 문제가 된다.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평생을 온실 속에서 살다 죽은 자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살다 죽은 자에 비해 (죄지을 가능성 차이의 영향으로) 죄악이 적다고 가정하자. 전자는 구원받고, 후자가 심판받으면 온당한가?

 

심판의 핵심은 모두가 승복하는 공정성에 있다. 사후심판이 필수라면, 동물 가운데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만일에 태어나기전 사후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고지받고, 태어남을 스스로 선택(인간, 새, 곤충, 야생동물 등)할 수 있다면 인간을 택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당뇨정상수치표

 

요산수치란

 

식전혈당 정상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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